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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어떤 때는 구원받은 것 같고·…

교회지킴이 0 38

어떤 때는 구원받은 것 같고·…

 

 시민 철학자는 자기의 고민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태어난 이상 누구나 꼭 한 번은 죽어야하는데, 지금 나는 살아 있는 그것이다."

 

 그렇습니다. 흐르는 물에서는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듯이 시간은 쉬지 않고 흐르며, 살아 있는 모든 사람에게 죽음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죽음은 어떤 사람에게는 갑자기, 또 어떤 사람에게는 서서히 다가오지만 그 어떤 사람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9:27), 죽음 저편에는 천국과 지옥이 있을 뿐 그 중간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빗과 어두움을 나누셨을 뿐, 그 중간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중간에서 머뭇거리는 것이나(왕상 18:21), 차지도 덮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것에 대하여 엄중히 경고하고 계십니다( 316).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받아 친국에 가든지, 멸망을 받아 지옥에 가든지 둘 중의 하나에 속하게 됩니다.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일입니까?

 

다행히 구원을 받아 아름다운 천국에서 주님과 영원히 기쁨을 누린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겠지만, 만약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으로 드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떠나 지옥에서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처럼 두렵고 기가막힌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 일이 이렇게 중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때는 구원 받은 것 같고, 또 어떤 때는 구원받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을 볼 때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며칠 전,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집사님과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 저는 오래 전부터 예수님을 믿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예수님은 저의 죄를 대신하여 심자가에서 못 박혀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그것을 진실로 민으십니까?"

 

", 저는 진실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 앞에서 죄가 없으시겠습니다. 그렇습니까? 이제는 죄인이 아니죠?"

 

그 집사님은 눈을 크게 뜨고 대답했습니다.

 

"무슨 그런 말씀을, 지는 하나님 앞에 늘 부족한 죄인입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집사님의모든 죄를 대신하셨다면 왜 또 죄인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제가 주님을 믿을 때까지의 죄는 용서해 주셨지만 그 후에 짓는 죄는 항상 회개함으로 용서받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죄인으로 계십니까?

 

", 저는 그래서 날마다 새벽이나 집회시간에 나가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심히 검손한 모습으로 허리를 급히며 말했습니다.

 

"집사님은 모든 죄를 다 회개하셨습니까?"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심령을 꿰들어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지 못한 죄는 하나도 없습니까?"

 

.. (작은 목소리로) 회개하지 못한 죄가 조금은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주님이 오신다면 주님 맞으실 확신은 있으십

니까?"

 

"..........."

 

"지금 죽는다면 하늘나라에 가실 확신은 있으십니까?"

저는 다시 한번 화실하게 물었습니다.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아니면 못 받으셨습니까?"

 

"(자신이 없는 목소리로) 어떤 때는 구원받은 것 같고, 어떤 때는 구원 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집사님은 구원받지 못하신 게 틀립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음 저편에는 친국과 지옥이 있을 뿐 중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죄가 한 호리라도 있다면 지옥에서 결코 나올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5:26)"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 이러한 어정영한 믿음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함정은 회개하면 좌가 용서된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가장 악랄한 사단의 도구입니다. 회개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죄를 용서받는 도구는아닙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강도 짓을 하다 불잡힌 죄인이 재관관 앞에서 통곡을 하며 자기 죄를 회개하고 뉘우웠습니다. 그러면 재판관이 그 죄인의 눈물 흘리며 회개하는 것을 보고 그를 용서해 줍니까?

 

 그 죄인이 눈물을 홀리며 회개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가 그죄 때문에 형벌 받아야 하는 것은 또 다른 별개의 문제입니다. 재판관은 법에 따라 공정하게 재판하여 관결할 것입니다.

 

 그 죄인은 자기의 눈물과 회개에 상관없이 법에 따라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공의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후 그 사람이 형량을 다 마치고 나오면 재관판이 또 그를 잡아다 재판을 하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피 값을 치렀기 때문입니다. 그는 재판관 앞에서도 전혀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 용서는 회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데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죄의 상은 사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6:23). 죄의 삶에 대하여 다른 것을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직 죽음과 영원한 형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공의와 상충되지 않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공의도 이루시고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 구원도 주시기 위하여 자기의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요일4:9,10).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주심으로 바로 우리가 죽은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 값을 지른 것이 되었으며 죄 값을 치렀기 때문에 다시는 죄로 인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지나쳐 갈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사실은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실 때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이 지난 죄는 용서되었으나 이후부터 범하는 죄는 자기 자신이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가 용서되는데 그 주님의 십자가는 지금부터 1900여 년 전의 사건입니다. 십자가를 기점으로 볼 때 우리의 죄 중에 주님의 십자가로부터 미래의 죄가 아닌 것이 어디 있습니까?

 

현시점에서 볼 때 파거나 현재나 미래가 있지, 1900여 년 전의 그 갈보리 십자가에서 보면 모두가 미래의 죄입니다. 그런데 어떤 건 용서받고 어떤 건 용서받지 못할 수 가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의 죄도 주님의 십자가에서 보면 미래의 죄입니다. 그러나 그는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었다"( 3:24)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우리 생애의 모든 죄를 담당해 주셨습니다( 2:13).

 

이제 모든 것은 확실해졌습니다. 구원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못 받은 것 같기도 한 것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기의 행위를 의지했기 때문이며, 구원받은 것을 확실히 아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를 의지했기 때문입니다.이제 검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시며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께서 저의 모든 죄를 책임져 주시고 해결해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 예수님께서 저의 영원한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주님을 마음에 영접해 들이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제 "나도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 가운데 기쁨으로 주님을 기다리시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의 자신

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

가 스스로 일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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